(요한복음 9:1-12, 새번역)
1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셨습니다.
2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 이 눈먼 사람이 누구의 잘못입니까? 그의 잘못입니까, 아니면 부모의 잘못입니까?”
3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이 사람이 죄를 범한 것이 아니요 그의 부모가 죄를 범한 것도 아니니 이는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4 우리는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낮에 해야 합니다.
아무도 일할 수 없는 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입니다.
”
6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니
7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의미합니다.
) 소경이 가서 씻고 눈을 뜨고 돌아왔습니다.
8 이웃 사람들과 그가 구걸하는 것을 본 사람들이 말하되 “저 사람이 거기 앉아 구걸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했다
9 그 중에 어떤 이는 말하되 이 사람이로다 하고 어떤 이는 그 사람이 아니라 그와 같은 사람이라 말하되 눈을 뜨게 한 사람이 이르되 내가 그 사람이로다 하니
10명이 그에게 물었다.
“그럼 어떻게 눈을 떴어?”
11 그가 대답하였다.
“예수라 하는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더라. 그래서 내가 가서 씻었더니 내가 보니.”
12 사람들이 눈을 뜨게 한 사람에게 “그가 어디 있느냐?” 그래서 그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
(고난도 신의 뜻인가?)
요한복음 9:1-12
20230305 / 윤만선목사
– 전혀 볼 수 없는 사람의 고통은 측정할 수 없습니다.
– 오래전 영동교회에 있을 때 안마사였던 교회 청년에게 물어보면 항상 “어려운 게 뭐야? 모든 것에 감사드립니다.
”
-예수님, 정말 소경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물었다
– 할렌 켈러는 “육체의 눈보다 마음의 눈을 잃는 것이 더 비극적”이라고 말했다.
– 예수님의 말씀
(예레미야 5:21) 어리석고 무지한 백성,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들아 이제 내 말을 잘 들으라.
– 하나님이 창조하신 푸른 하늘은 보는데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비참할 것입니다.
– 당신의 죄를 통곡하며 두드리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지 못한다면 안타까운 일입니다.
– 영적으로 보는 눈이 없으면 영적인 거지입니다.
(에베소서 1:17-19, 새번역)
17 영광의 아버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마음 눈을 밝히사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기업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9 나는 또한 우리 믿는 자들에게 큰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 영적 눈을 뜨게 해 줄 무언가에 대한 갈망
-예수님이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을 만나심
– 그 사람이 죄 때문에 소경이 되었다는 제자들의 질문은 매우 왜곡되고 격렬합니다.
– 고통의 무게가 곧 죄의 무게이므로 제자들도 그 때의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 당시 사회는 죄로 인한 장애도 죄로 취급했다.
– 반면에 의롭게 사는 사람은 모든 것이 형통하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도 누군가의 괴로움과 고통을 그런 식으로 바라본다.
– “내가 이 사람보다 낫다”는 영적 교만은 이렇게 생긴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난다.
– 예수님은 누군가의 죄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원인을 말씀하시지 않고 목적을 말씀하신다.
– 이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 제자들은 원인을 묻지만 예수님은 목적을 말씀하신다.
고난도 하나님의 뜻입니까?
사실인가요?
– 아니요.
– 눈먼 자를 만들어 하나님을 드러내고 삶을 어렵게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아프게 하십니다.
– 고통은 여전히 우리 삶에서 우리를 괴롭힌다
– 아브라함, 욥, 다윗, 다니엘의 이야기는 정말 공정한가?
– 그런 고통 속에서 침묵하는 신?
나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고통 중에 통곡하시고 탄식하십니다.
– 어려움의 이유를 아는 것 이상. 선하신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당신이 항상 사랑하는
(고린도후서 1:8-10, 새번역)
8 형제자매 여러분, 아시아에서 우리가 당하고 있는 환난을 여러분이 알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힘에 짓눌려 마침내 삶의 모든 희망을 잃었습니다.
9 우리는 이미 사형 선고를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의지할 수 없고 오직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10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토록 위험한 죽음의 순간에서 건져 주셨고 지금도 건져 주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미래에 우리를 구원하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습니다.
– 인생의 폭풍 가운데 고통이 찾아오면 탓하지 말고 여전히 아프지만 기대하며 맞이하십시오.
– 이것 때문에 주님을 더 의지하고 신뢰하게 될까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고통의 원인을 찾고 과거를 되돌리려 합니다.
– 그리고, 찾아도 찾을 수 없다면 전생에 많은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십시오.
– 이것은 숙명론, 숙명론
– 어떤 일을 할 때 자만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비난의 화살을 남에게 쏴라.
– 이것저것 탓하다 결국 화살은 신에게 향한다
– 인간은 원인을 누구에게 귀속시켜야 하는 존재이다.
– 원인을 묻지 말고 고통이 가져올 미래를 보라
– 주님은 사람이 끝까지 갈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 모세의 광야에서 40년, 요셉의 슬픈 과거를 바라보며 그녀는 부정하고 비난했다
– 요셉은 수년간의 고통을 탓하지 않고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앞서 보내셨고 돕고 싶었습니다.
”
– 고통받는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 정죄하고 심판하는 자의 모습이 없음
– 해야만 해!
!
– 이유를 묻지 말고 방법을 물어라
– 오늘이다 당신은 지금이 그 때라고 말합니다.
– 기회가 항상 우리에게 열려있는 것은 아닙니다.
–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 타액으로 바닥을 엽니다.
새 창조의 의미. 주저하지 않고 순종했을 때 새 창조의 사건이 선포되었습니다.
– 에피크리우스에게 올려주세요. 기름부음
– 예수님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거지에게 삶의 목적을 주셨습니다.
–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만들고 계십니다.
– 고 박사의 이야기 강영호
– 맹인은 몸의 빛이 아닌 생명의 빛을 찾습니다.
– 묵상 –
괴로움도 고통도 없었을까? 비록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할 때가 많았지만 하나님은 저와 제 가족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건져 주셨습니다.
물론 남 탓도 했지만, 결국은 내 죄에 얽매일 뿐이었다.
하나님께서 나와 내 가족을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크지만 동시에 여러 가지 세상적인 어려움이 공존합니다.
눈먼 사람도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모세, 요셉, 욥, 다윗의 차이는 나와 비교할 수 없는 고통과 고난 가운데서도 간절히 하나님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을 찾으셨습니다.
당신이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은 분명합니다.
희망, 희망 없이는 기대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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