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이것이 구원이다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과소평가된” 네 가지는 무엇입니까? 이 “네 가지”가 없으면 “네 가지 없는 신자”가 되고, “네 가지” 없는 신자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네 가지는 “구원”, “성경”, “하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중 첫 번째인 구원을 어떤 단어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구원의 결과는 영생입니다.

세 끼 삼시세끼처럼 간단한 말로 구원을 표현한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놀랍고 중요하고 귀한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고, 사람이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지고 있어도 구원이 없다면 필연적으로 헛된 것이 있습니다.

이 구원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부와 쾌락과 명예와 권세는 사람이 무시할 수 없는 큰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힘들고 애쓰고 있는지를 보면 그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재물이나 재물이나 권세 같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보이는 것은 “일시적”이고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반은총에서 “빈 것은 빈손으로 오고 빈손은 간다”는 것이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은 부에 관한 것입니다.

“권불 십년 화무 일홍”이라고 합니다.

마치 10년이 버티기 힘든 것처럼 세상의 어떤 권력도 영원할 수 없고, 아무리 붉은 꽃이 아름다워도 시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힘과 아름다움의 실현입니다.

믿는 우리가 바라는 것은 덧없고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늘에 있는 영원한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것은 “보이는 것”이 ​​완전히 무가치하고 불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라 빵은 보이는 것으로 성경에서 “물질적”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말씀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영적”을 나타냅니다.

주님의 목적은 눈에 보이는 빵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 “영원한 것”, “영적인 것”을 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험자 마귀는 보이는 떡만 먹고 살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참 사람이신 주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 입에서 나오는 말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심으로 믿음의 참 가치는 떡같이 생긴 데 있지 아니하고 보이지 않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좇는 데 있습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잠시 동안하려고합니까 아니면 영원한 것을 찾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최선을 다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믿음의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고 영원하며 영적인 것입니다.

보이는 것이 신앙의 “핵심 가치”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는 것의 가치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들이 관찰하고 애쓰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 영원한 것입니다.

이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일부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이것의 필요성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고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들의 보응을 피하리요”(히 2:3) 성경은 “이 큰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그 범위만 큰 것이 아니라 내용도 큰 그 큰 구원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세상에 하나님의 선물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원의 복음이 소수의 민족과 나라와 민족이 아니라 만민과 만민에게 전파되어야 합니다.

사도행전에서 우리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뿐만 아니라 마태복음에 있는 마지막 대위임령은 어떻습니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세상 끝 날에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태복음 28:28) :28) 19-20)

그러므로 복음의 구원의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 모든 국가, 모든 민족, 땅 끝까지 전파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명과 요구 사항은 사람의 “진정한 필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복음이 필요한가요? 모든 사람은 구속이 필요한 위치와 조건에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로마서 3장 23절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하고, 로마서 3장 9-10절은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가 나으냐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밝혔느니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유대인과 그리스인이 죄 아래 있다는 말은 그들이 홀로 죄 아래 있다는 뜻이 아니며 로마, 영국, 프랑스, ​​스페인, 아프리카, 아시아 등 다른 민족도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두를 의미하므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 중에 의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 사람은 죄인이고 그로 인한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실제적인 문제입니다.

과학, 의학, 위대한 지성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죽음의 원인을 모릅니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하나님은 인간의 삶에서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입니다.